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 가야 할 곳은 둘째 치고 지금 가고 있는 곳조차 모른다면 기술이 어떻게 인류의 도구일 수 있을까. 그건 오히려 재난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일수록 시선이 중요하다. 밀려나가는 것을 응시하는 행동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향방을 가늠하는 나침반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언제나 그랬듯, 세상을 바꾸는 건 기술이 아니라 관점이다.
🔖 대기업이 선진적인 기술력을 무기 삼아 돌격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중소기업뿐만이 아니라 그 아래 계약된 개별 노동자다. 플랫폼은 이용자에게는 일상의 편리를 돕는 순풍이지만, 해당 산업이나 생태계에는 파괴적으로 몰아치는 폭풍이다. '공동 성장'은 테크 업계가 아니라 그들이 침투한 생태계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플랫폼 노동자가 된 모든 이를 향한 단어여야 한다.
🔖 접근성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어떤 이는 접근성을 기존 기획에 더해야만 하는 플러스 알파처럼 여긴다. '그들'을 위해 할 도리를 했다는 식으로. 그러나 접근성은 특정한 소수 그룹을 향해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경계에 선 고통까지도 포괄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작업은 노안이나 약시를 가진 이를 위한 것이 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은 청력이 약한 이에게도 도움이 된다.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벌여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가 생겼기에 유아를 데리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도, 나이가 많아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 든 사람도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접근성은 장애인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다.
🔖 서비스 연속성을 위해 필요한 건 백업과 복구에 관한 실질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매뉴얼과 프로세스 등 정책 일반이다. 그러나 정작 현업에서 서비스 연속성은 이 같은 기술이나 정책이 아니라 노동의 영역에만 오롯이 전가되고 있다. 야간작업과 휴일근무가 서비스 연속성의 필수조건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지보수 노동자는 서비스 연속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한밤 내내 푹 잠들 수 있는 숙면의 시간이나 노트북 없이도 떠날 수 있는 여행 같은 것을.
🔖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다가 만났던 사수 한 명은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시스템은 그릇이기 때문에 개발자는 이 그릇에 무엇이 어떻게 담기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내가 만들 시스템에 담길 업무 혹은 콘텐츠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만들어야 그것에 가장 적합한 그릇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이후로는 내가 만드는 게 어떤 그릇인지 오래 생각했다. 그릇은 기능과 미관뿐만 아니라 크기 역시 중요하다. 담아내는 것에 비해 크지도, 작지도 않아야 한다. 간혹 사람들은 하려는 것에 비해 너무 과한 시스템을 상상하거나, 주어진 조건에 맞춰 대강 해치워버리려고 한다. 대개 전자는 그럴 듯한 실적을 위해서, 후자는 예산과 시간의 제약을 이유로 나타난다. 둘 중 어느 쪽에도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면 끈질기게 고민해야 한다. 오래 고심해서 시스템의 적정한 규모를 가늠하고 결국 구현해냈을 때 나는 이 노동의 아름다움을 느낀다.